2화. 배 안의 불씨
거울 속 소녀가 낯설었다.
열여섯 살의 에이라 아셰리트. 옥에서 학대받기 전의, 아직 부서지지 않은 몸. 은빛이 감도는 금발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청록색 눈동자에는 다크서클 하나 없었다. 뺨에는 홍조가 살아있었고, 손등 위로 돌출된 뼈도 보이지 않았다. 회귀 전 마지막 시절, 나는 스스로를 거울에서 오래 바라보지 못했다. 보면 볼수록 살갗에 새겨진 상처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 얼굴에는 그 어떤 흔적도 없었다. 깨끗하다. 지독하게 깨끗해서 오히려 이질적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뺨을 짚었다. 손가락 끝에 온기가 닿는다. 살아있다. 분명히, 살아있다.
그런데 배는 죽어있지 않았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침의 자락이 부드럽게 늘어진 배 위로 손을 올렸다. 열여섯 살의 몸은 회귀 전과 달리 아직 가녀렸지만, 내 손바닥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안에 무언가 있다는 걸.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석 달짜리 아이는 실루엣조차 남기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살아있다는 걸. 회귀 전 내 몸 안에서 아이가 처음 발길질했을 때의 충격을, 그 작은 떨림을 나는 죽는 순간까지 기억했다.
원래대로라면 이 아이는 존재하지 않아야 했다.
열여섯 살의 에이라는 아직 폐황자 데이미언을 만난 적도 없다. 그와의 접촉이 이루어진 것은 열일곱 살 가을, 황도에서 열린 광명제 때였다. 하지만 임신 석 달 상태로 회귀한 나는 그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임에도, 이미 그의 아이를 배 안에 품고 있었다. 과거는 돌아왔지만 결과는 그대로였다. 회귀 의지가 발현될 때, 나의 모든 것이 함께 왔다. 상처만 빠지고, 아이는 남겼다.
신이 있다면 잔인한 농담을 즐기는 존재임이 분명했다.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게 가다듬었다. 감정이 올라오려 했다. 분노인지, 공포인지, 아니면 그 사이 어디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무언가. 그러나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어두워지고, 어두워지면 그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했잖아.*
데이미언의 목소리. 죽어가면서도 귓속에 새겨진 그 말. 사랑한다고 했다.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는 내 손목에 쇠고랑을 채운 자였다. 사랑한다고 했는데, 나는 그의 옥에서 아이와 함께 썩어갔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죽으면서도, 죽은 후에도, 그리고 다시 태어난 지금도 믿지 않을 것이다.
믿을 이유가 없었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가득 채웠다. 아셰리트 공작가의 본채는 황도 동쪽에 자리해, 이 시각이 되면 침실 전체가 금빛으로 물든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 방의 빛을 좋아했다. 따뜻하고, 먼지 하나 없이 고요했으니까. 그러나 지금 그 빛이 배 위에 얹힌 내 손목을 환하게 비추었을 때, 나는 그 아름다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손을 떨지 않는 사람이었다. 회귀 전 5년 동안, 나를 비웃는 사람들 앞에서도, 황태자 알렉시스가 파혼을 통보할 때도, 심지어 처음 옥에 갇히던 날 밤 발끝 아래로 차가운 석회 바닥이 느껴졌을 때도 손을 떨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열여섯 살의 내 손은 통제를 거부하고 있었다. 이것이 공포인지, 아니면 몸 안의 생명이 처음으로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배를 누르지 않으려 조심하며 손을 거두었다.
아이는 잘못이 없었다. 이 몸속의 작은 불씨는 그가 나에게 저지른 일과 무관했다. 데이미언의 아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원망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 진실을 이미 다섯 해 전에 깨달았다. 아이가 처음 내 배 안에서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 생명을 미워하려 했다. 하룻밤 내내 미워하려 애썼다. 그러나 새벽이 밝았을 때 남은 감정은 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섭도록 완전한 사랑이었다.
그래서 나는 죽으면서도 아이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돌아왔다.
숨을 들이켰다. 내 폐 깊은 곳까지 공기가 찼다. 열여섯 살의 몸은 스물한 살보다 폐활량이 작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공기가 의지로 채워진 것 같았다. 나는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단 한 번도 이 아이를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걸 쓴 적이 없었다. 죽기 전의 나는 살아남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빼앗겼으니까.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움직인다.
데이미언이 나를 찾기 전에 먼저 숨는다.
알렉시스의 약혼 제안을 차단한다.
어머니를 지킨다.
그리고 이 아이를, 세상 누구도 닿을 수 없는 곳에서 태어나게 만든다.
나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일어나 찬물로 세수를 했다. 차디찬 물이 뺨을 때리듯 적셨다. 촉감이 선명했다. 이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죽기 전의 나는 옥에서 따뜻한 물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지금 이 차가운 물이 오히려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게 아이러니였다.
몸 상태를 차분히 훑었다.
신력은 평소 3등급이지만 임신 중에는 과도한 발현이 위험했다. 회귀 전, 신전에서 공부했던 의술 지식이 떠올랐다. 임신 중 신력을 과사용하면 자궁에 열이 오를 수 있다. 가벼운 감지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전투나 호신에 쓰는 것은 당분간 자제해야 했다. 스스로를 지킬 방법이 신력 하나만은 아니니, 그것은 견딜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이미 5년치의 미래 지식이 있었다. 그것이 어떤 신력보다 강한 무기였다.
몸을 옷으로 가리는 것도 문제였다.
지금은 석 달이라 외견상 드러나지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감추기 어려워진다. 출산 예정은 회귀로부터 약 여섯 달 후. 겨울 초입 무렵이다. 그때까지 나는 이 몸을 감추면서, 동시에 황실 정치의 한복판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것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일인지는, 직접 겪어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나 내가 아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로젤리아 수녀. 황실 신전에서 추방된 그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회귀 전 그녀는 옥에 갇힌 내게 먹을 것을 몰래 들여보내 주었다. 끝내 내가 살아남지 못했지만, 그녀는 내 아이가 태어나기를 끝까지 바랐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그녀를 찾아가야 했다. 사람이 필요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만이라도.
문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가볍고 빠른 발걸음. 이 소리를 나는 안다.
"아가씨, 일어나셨나요? 공작 부인께서 아침 식사에 오시길 청하십니다."
시녀의 목소리였다. 나는 손을 들어 옷매무새를 단정히 고쳤다. 오늘 오후 가문 회의가 열린다. 황태자 알렉시스의 특사가 아셰리트 공작가를 방문해 약혼 논의를 꺼낼 예정이었다. 회귀 전의 나는 그 약혼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번에는 거절한다.
그러나 거절에도 방법이 있었다. 단순히 싫다고 해서는 안 되었다. 황태자 측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가문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했다. 5년치 기억 속에서 나는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알렉시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대외적 망신이었다. 그렇다면 약혼을 무산시키는 데 필요한 건 거절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문을 향해 걸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렸다. 어린 시녀가 환하게 웃으며 들어섰다. 그 웃음이 아직 세상의 더러움을 모르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웃음을 보고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시작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얼굴을 보러 가야 했다. 죽지 않은 어머니를. 아직 살아있는 어머니를.
그 생각 하나만으로, 나는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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