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옥 안의 재, 침실의 빛
죽음은 차가웠다.
사람들은 죽음이 공포스럽다고 했지만, 막상 그 문턱에 서자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이미 느낄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황도 엘렌하임 지하 옥, 돌벽에서 새어 나오는 한기가 뼈까지 파고드는 그 공간에서, 나는 다섯 해를 보냈다. 스물한 살.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나이는 되었지만, 내가 버텨낸 것이 삶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손가락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차갑게 식은 돌 바닥에 볼을 대고 누운 채, 나는 천장의 금간 틈새를 바라봤다. 천장에는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이끼가 번져 있었고, 그 사이로 아주 가느다란 빛이 비집고 들어왔다. 햇살이었다. 봄이 왔다는 뜻이었다. 나는 봄마다 이 빛 한 줄기로 계절을 셌다. 이번이 다섯 번째였다.
숨이 더 이상 들이쉬어지지 않을 때,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했잖아."
데이미언이었다.
창살 너머로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해하기에 너무 늦었고, 믿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꺼풀을 닫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거부였다.
그리고 아이 생각이 났다.
옥에서 태어났던, 아주 잠깐이었지만 내 팔에 안겼던, 그 작고 따뜻했던 무게. 다섯 달. 그것이 내가 아이를 품었던 전부였다. 손가락을 쥐고 눈을 찡그리던 그 얼굴은 끝내 누구를 닮았는지 알아보기도 전에 내 손에서 떠나갔다. 나는 이미 너무 약했고, 로젤리아 수녀가 아이를 데려가면서 내게 속삭였다. 살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이 진실이기를, 죽어가면서도 나는 믿고 싶었다.
다시는 못 보겠지.
그 생각이 심장을 찔렀다. 죽음이 차갑다고 했는데 그 순간만은 뜨거웠다. 몸 전체를 태울 것처럼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에서 치밀어 올랐고, 나는 내가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아이였다. 살리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막지 못한 날들이었다.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생각이 완성되기도 전에 의식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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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뜨였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천장이 너무 하얬다. 돌이 아니었다. 금간 이끼도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고, 손이 닿은 것이 부드러운 리넨이었다. 눈을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시야가 또렷해질수록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이건 내 침실이었다.
아셰리트 공작가 본채, 북쪽 익관 이층. 레이스 커튼 너머로 햇빛이 물결처럼 흘러들고 있었고, 창가 탁자 위에는 내가 열여섯 살이 되던 봄에 어머니가 올려두었던 흰 수선화 화병이 놓여 있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그 꽃병이, 물기를 머금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소리가 들렸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시녀들의 조용한 대화, 계단을 오르는 가벼운 발걸음. 그리고 문이 열렸다.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눈을 감아야 할지, 뒤를 돌아야 할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냉기처럼 굳어버린 나를 향해 목소리가 먼저 닿았다.
"에이라, 아직 자고 있어? 아침 식사 준비 됐어."
어머니였다.
나는 다섯 해 만에, 죽어서도 잊지 못했던 그 목소리를 들었다.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뒤를 돌았다. 문 안으로 들어서던 어머니가 내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그녀는 서른여덟 살, 은빛이 살짝 섞인 금발을 단정히 올려 묶은 채 짙은 남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생사의 경계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던 얼굴이, 이제는 살아있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고 있어? 무슨 꿈이라도 꿨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옥에 갇힌 다섯 해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던 내가, 이 순간 가장 먼저 무너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눈 뒤가 뜨거워졌다. 울컥, 소리도 없이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나는 이를 깨물었다. 아랫입술 안쪽 살이 잘리는 감각이 또렷했고, 그 통증 덕분에 간신히 버텼다.
어머니가 살아있었다.
그 사실 하나로, 다섯 해의 무게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이불 위에 손을 올렸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부드러운 리넨의 감촉이 실감을 심어주었다. 꿈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 감촉은, 옥의 돌바닥이 아니었다.
열여섯 살.
내가 처음 황태자 알렉시스와 약혼 서약을 앞두고 있던 해였다. 아셰리트 공작가의 장녀로서 황도에 정식 입성하기 전, 마지막으로 본가에서 보내는 봄이었다. 앞으로 닥쳐올 것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언제 죽는지, 아버지가 언제 무너지는지, 알렉시스가 언제 나를 내다버리는지. 그리고 데이미언이 언제 내 앞에 처음 나타나는지도.
"……잠깐 어지러웠어요."
나는 말을 만들어 냈다. 열여섯 살이 쓸 만한 목소리로, 아주 조심스럽게.
어머니가 눈썹을 가볍게 찌푸리며 다가왔다. 이마에 손이 닿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나는 그 차가움이 반가워서 눈을 감았다.
"열은 없네. 어제 무리했나. 신력 수련 일지를 다시 조정해야 할 것 같아."
신력. 그 말에 나는 순간 손가락 끝을 오므렸다. 신력 3등급. 회귀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 몸 안에는 그보다 더 시급하게 숨겨야 할 것이 있었다.
임신 3개월.
회귀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죽어가면서 되돌아온 것이고, 아이는 죽음의 경계를 나와 함께 건넜다. 6개월 뒤, 이 몸은 아이를 낳는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낭만도 기적도 없었다. 다만 살아야 했고, 숨겨야 했고, 내보내야 했다.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발견되어서는 안 됐다.
어머니가 화병에서 수선화 한 송이를 꺾어 내 침대 맡에 꽂아두며 말했다.
"오늘 오후에 가문 회의 있어. 에이라 네가 배석해도 돼. 아버지가 허락하셨어."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기억 속의 날짜를 더듬었다. 회귀 직전 5년치의 기억이 내 머릿속에 빽빽했다. 오늘 가문 회의에서 처음으로 황태자 알렉시스와의 약혼 제안이 정식으로 논의된다.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버지는 수락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살아있는 어머니의 등을.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의 걸음걸이를. 저 등이 쓰러지는 날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눈물은 이미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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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햇살이 기울기 시작할 무렵, 나는 가문 회의실로 걸어가면서 창밖을 한 번 바라봤다. 황도 엘렌하임의 봄 하늘은 맑았다. 어딘가 먼 변경, 카이엔 영지에서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스물한 살의 데이미언 폰 엘카르덴. 내가 회귀한 이 시점에 그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하나 있었다.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그에게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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